인구 40만 나라가 EU를 두 번째로 걷어찬 이유, 답은 생선이었다

82.5%가 투표장에 나와서 내린 결론

아이슬란드가 유럽연합(EU) 가입협상 재개를 다시 한번 거부했습니다. 아이슬란드 공영방송 RUV에 따르면 8월 30일(현지시간)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6개 선거구 개표가 모두 끝난 결과 반대가 52.8%, 찬성이 47.2%로 나타났습니다.

투표율은 82.5%로, 심각한 재정위기가 닥쳤던 2009년 4월 총선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개표 초반에는 찬성이 근소하게 앞섰지만, 농어촌 지역 표가 집계되면서 반대가 역전했고 이후 격차를 벌리며 최종 승리를 확정했습니다. 수도 레이캬비크에서는 찬성이 우세했던 반면 투표율은 60%대에 그쳤고, 반대표가 많았던 지방 선거구는 80%를 웃도는 참여율을 보였습니다.

아이슬란드 국기와 EU 깃발 (사진 : 뉴스1)

이번 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정부는 결과를 존중하겠다고 미리 밝힌 상태였습니다. 협상 재개를 지지해온 크리스트룬 프로스타도티르 총리는 개표 직후 “이번 정부 임기 내에는 가입협상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아이슬란드의 EU 가입 논의는 최소 2028년까지 멈추게 됐습니다.


왜 하필 지금 다시 이 질문을 던졌나

아이슬란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은행 시스템이 통째로 무너진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EU 가입협상을 진행한 전례가 있습니다. 당시에도 어업권 문제가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했고, 국내 여론이 악화되자 2013년 집권한 우파 연합 정부가 협상을 중단시켰습니다.

이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건 2024년 12월 크리스트룬 프로스타도티르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입니다. 정부는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압박 등 불안정해진 국제 정세 속에서, EU가 안보와 경제 양쪽의 안전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재추진에 나섰습니다.

찬성 측은 EU 가입이 무역 확대와 비용 부담 완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 논리는 유권자를 완전히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아이슬란드가 이미 유럽경제지역(EEA) 협정을 통해 EU 단일시장에 상당 부분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구전쟁까지 치른 나라가 어업권을 포기 못하는 이유

반대 진영의 핵심 논리는 EU 가입 시 입법과 규제 권한 일부가 EU로 넘어가면서 국가 주권이 약화되고, 국가 핵심 산업인 어업에 대한 독자적 결정권도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슬란드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12개월 기준 수산물은 전체 상품 수출의 약 40%를 차지합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어업은 단순한 산업을 넘어 경제적 독립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분야입니다. 1970년대에는 200해리 어업수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영국과 이른바 ‘대구전쟁(Cod Wars)’까지 벌인 역사도 있습니다. 외국 어선에 자국 수역을 개방하는 문제는 지금도 정치적으로 폭발력이 큰 사안입니다.

EU에 가입하면 원칙적으로 공동어업정책(Common Fisheries Policy, CFP)이 적용됩니다. CFP는 EU 회원국들이 서로의 수역에 접근할 수 있도록 어획량과 수역 관리를 공동으로 결정하는 체계입니다. 아이슬란드가 자국 수역의 어자원에 대한 독점적 통제권을 얼마나 지켜낼 수 있을지가 두 번의 협상 모두에서 최대 난관으로 꼽힌 이유입니다.

30일 레이캬비크에서 한 시민이 EU 깃발을 들고 있다 (사진 : AP연합뉴스)

세계 최고 수준의 국민소득과 삶의 질을 유지하고 있는 아이슬란드가 굳이 EU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도 반대 여론을 뒷받침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EU 정회원과 지금 체제는 뭐가 다른가

아이슬란드는 EU 정회원국이 아니지만, 1994년부터 유럽경제지역(EEA) 협정을 통해 EU 단일시장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상품, 서비스, 자본, 인력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EU 단일시장의 핵심 4대 원칙을 EU 비회원국 신분으로도 적용받는 구조입니다.

다만 EEA 체제와 EU 정회원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EEA 회원국은 EU 정책 결정 과정에 투표권이 없어 자신에게 적용되는 규칙을 만드는 협상 테이블에는 앉지 못합니다. 화폐도 자국 통화인 아이슬란드 크로나를 그대로 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동어업정책과 공동농업정책은 EEA 협정 적용 범위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아이슬란드가 지금까지 자국 어업 수역에 대한 통제권을 온전히 지켜올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이 예외 조항입니다.

즉 아이슬란드는 무역과 경제적 실익은 이미 상당 부분 챙기면서, 어업권만큼은 EU 규칙 밖에 남겨두는 선택을 계속해온 셈입니다. 이번 국민투표는 이 균형을 유지할지, 아니면 정회원이 되는 대가로 어업 결정권 일부를 내줄지를 다시 물은 것이었습니다.


노르웨이도 걸어온 같은 길

이런 선택을 한 나라가 아이슬란드만은 아닙니다. 노르웨이는 국민투표에서 EU 가입을 두 차례(1972년, 1994년) 모두 부결시켰고, 아이슬란드와 마찬가지로 EEA 협정을 통해 EU 단일시장에 접근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의 공통점은 뚜렷합니다. 석유와 천연가스(노르웨이), 수산물(아이슬란드)이라는 핵심 자원 산업에 대한 통제권을 EU 공동정책에 넘기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EEA 체제만으로도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적 성과를 내고 있어 정회원 가입의 실익이 크지 않다는 점입니다. 노르웨이는 지난 30년간 EEA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1인당 GDP 기준 세계 최상위권 국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이슬란드 유권자들에게 이 노르웨이 모델은 EU 가입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실제 사례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크리스트룬 프로스타도티르 총리가 30일 레이캬비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AP연합뉴스)


정리

아이슬란드는 두 번째로 EU 가입협상 재개를 국민투표로 걷어찼습니다. 러시아발 안보 불안과 그린란드를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까지 겹친 상황에서도, 유권자들은 EU라는 안전판보다 어업 수역에 대한 독자적 결정권을 지키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미 EEA 협정으로 단일시장에 접근하고 있는 만큼 정회원 가입의 실익이 크지 않다는 계산도 작용했습니다.

EU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결과입니다. 일부 EU 당국자들은 아이슬란드를 EU 확장 정책에 대한 회의론을 완화하고, 북극 안보가 주목받는 시점에서 전략적 입지를 강화할 카드로 봐왔기 때문입니다. 프로스타도티르 총리가 임기 내 재추진 가능성을 닫아둔 만큼, 이 논의는 최소 2028년까지는 다시 나오기 어려워 보입니다.

Categories:

Updated: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