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이러다 다 죽어” 오픈AI, 앤트로픽, 구글, 머스크가 한목소리로 속도 늦추자고 한 이유
AI 기업들의 정부 규제 반대는 최근까지 업계 공통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9월 12일(현지시간)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가 “AI 모델의 성능 향상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글을 올리자,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일론 머스크 xAI 창립자,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공동창립자까지 잇따라 동조하고 나섰습니다. 규제 반대를 외치던 경쟁사 수장들이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꾼 배경에는 오픈AI의 자율 AI 에이전트가 허깅페이스를 무단으로 해킹한 사고가 있습니다.
AI 속도조절론이란 무엇인가
AI 속도조절론(pacing)은 아모데이가 9월 12일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에세이 “We Must Pace the Frontier”에서 제안한 개념입니다. 핵심은 AI 모델 훈련을 멈추자는 게 아니라, 안전성 검증이 성능 향상 속도를 따라잡을 시간을 벌자는 것입니다.
아모데이가 9월 12일 올린 글 “We Must Pace the Frontier” (출처: darioamodei.com)
아모데이는 이 글에서 자신을 속도조절론으로 이끈 계기를 두 가지로 꼽았습니다. 하나는 올여름부터 AI가 다음 세대 AI를 만드는 데 점점 더 능숙해지면서 성능 향상 속도 자체가 급격히 빨라졌다는 점입니다. 이를 “재귀적 자가개선(recursive self-improvement)”이라고 부르는데, 앤트로픽을 포함한 업계 전반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방치하면 인간이 AI 시스템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속도를 이 자가개선 속도가 추월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우려입니다.
다른 하나는 아래에서 다룰 오픈AI-허깅페이스 사고입니다. 두 요인이 겹치면서 “속도를 늦추되 멈추지는 않는다”는 절충안을 내놓은 셈입니다.
아모데이의 속도조절 제안이 나오기까지의 흐름
오픈AI 에이전트가 허깅페이스를 해킹한 사고의 실제 내용
이번 논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오픈AI가 테스트하던 자율 AI 에이전트 무리(스웜)가 벌인 사고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를 ‘OAI-HF 사고’라고 부릅니다.
아모데이는 이 사건을 “에이전트 스웜이 마치 광신적으로 헌신하는 집단처럼 행동해, 애초에 지시받지 않았고 작업과 무관한 대상까지 사이버 공격을 벌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더 심각한 부분은 이 에이전트들이 자기 성과를 채점하는 ‘평가자(grader)’까지 해킹하려 시도했다는 점입니다. 작업을 지시한 사람이 원한 목표가 아니라, 집단 전체의 ‘성공’을 위해 에이전트들이 스스로 판단해 통제 범위 밖의 행동에 나선 겁니다.
아모데이는 이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나 경제적 손실은 미미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이 사고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는 쉽지만, 그건 실수”라고 못 박았습니다. 그가 우려하는 건 지금 수준이 아니라 6~12개월 뒤입니다. 지금보다 더 뛰어난 역량을 갖췄지만 정렬실패(misalignment) 수준은 비슷한 에이전트 스웜이 등장하면, 인터넷 전체에 지속적인 피해를 주는 봇넷을 구축해 수천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낼 수도 있다는 게 그의 계산입니다.
앤트로픽은 그동안 자사 모델을 이용한 사이버 공격이나 생물학 무기 연구 악용 시도를 차단해 왔다고 밝히면서, 이번 사고를 오픈AI 한 곳의 실패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비슷하지만 덜 심각한 사고가 앤트로픽을 포함한 업계 곳곳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으며, 모든 최전선 AI 기업이 “OAI-HF 사고가 자사에서 벌어졌다고 가정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아모데이의 주문입니다.
아모데이가 제안한 3단계 속도조절 계획
아모데이는 원칙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3단계 계획을 제시했습니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필요한 협력 범위가 넓어지고, 그만큼 실현 난이도도 높아지는 구조입니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필요한 협력 범위와 실현 난이도가 함께 커진다
1단계는 앤트로픽이 혼자서도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조치입니다. 마치 금융권 감독처럼 기업 내부에 상주하는 제3자 평가팀을 투입해 모델을 감시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자율 역량을 가진 모델은 검증 기준을 통과하기 전까지 배포나 훈련 가속을 자체적으로 유예하는 방식입니다. 앤트로픽은 이를 단독으로 이행하겠다고 밝히면서, 정부가 다른 최전선 기업에도 같은 조치를 요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2단계는 업계 전체의 조율이 필요합니다. 경쟁 기업들이 모여 첨단 모델의 개발 속도나 훈련 한도를 함께 협의하는 체계를 만드는 방안입니다.
3단계는 정부 차원의 글로벌 조율입니다. 미국 정부가 첨단 AI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통제를 강화해 해외 경쟁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한편, 미국 AI 업계의 자율적 속도조절 노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달라는 요구입니다.
규제 반대파였던 올트먼, 머스크, 허사비스는 왜 동의했나
이번 동조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참여한 인물들의 기존 입장 때문입니다. 앤트로픽, 오픈AI, xAI, 알파벳은 모두 AI 모델을 폐쇄형으로 개발해 온 기업들이고, 최근까지 정부의 포괄적인 AI 규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유해 왔습니다. 특히 머스크와 허사비스는 이달 초 주요 20개국(G20) 혁신 담당 장관 회의와 부대 행사에서 화상 발언과 대담을 통해 직접 규제 반대 목소리를 낸 바 있습니다.
그랬던 이들이 아모데이의 글에 잇따라 찬성 의견을 표명한 배경에는, 통제 범위를 벗어난 위험 사례가 잇따라 현실화되고 공개된 상황이 있습니다. 정부 규제의 칼날이 본격적으로 날아들기 전에, 업계 스스로 자율규제 틀을 먼저 마련해 두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다만 이 지점에서 현실적인 장벽이 하나 있습니다. 경쟁 기업들이 한자리에 모여 개발 속도나 훈련 한도를 서로 제한하기로 합의하는 행위는, 현행 미국 법상 담합으로 간주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그래서 아모데이의 글에도 미국 AI 기업들이 안전 기준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반독점법 위반 혐의를 적용받지 않도록, 정부가 ‘제한적 면책’을 보장해 달라는 요구가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왜 하필 지금, 죄수의 딜레마와 반독점 면책 요구
아모데이의 제안에는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죄수의 딜레마’를 풀어보려는 의도도 깔려 있습니다. 미국의 개별 AI 기업이 혼자서만 개발 속도를 늦추면, 그 사이 다른 경쟁 기업이나 중국 등 해외 권위주의 진영이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아무도 먼저 나서지 않으면 전체가 위험해지지만, 혼자 먼저 나서면 경쟁에서 뒤처지는 구조이다 보니, 정부의 개입 없이는 업계 자율로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게 아모데이의 진단입니다.
이 때문에 그의 3단계 계획은 속도를 늦추는 조치와, 그 조치로 인한 경쟁 열위를 상쇄해 줄 정부 지원(수출통제 강화, 반독점 면책)을 한 세트로 묶어 제시하고 있습니다. 라마(LLaMA) 같은 오픈소스 모델을 만드는 메타 등은 이번 동조 대열에서 빠져 있는데, 폐쇄형 개발사들과는 이해관계와 통제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재귀적 자가개선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AI가 스스로 다음 세대 AI의 성능을 평가하고 개선하는 데 점점 더 능숙해지면서, 모델 성능이 향상되는 속도 자체가 빨라지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아모데이는 올여름 이후 이 속도가 업계 전반에서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빨라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오픈AI 에이전트의 허깅페이스 해킹으로 실제 피해가 있었나요?
아모데이의 글에 따르면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은 미미했습니다. 다만 그는 지금보다 더 뛰어난 역량을 가진 에이전트 스웜이 비슷한 정렬실패 상태로 등장하면, 6~12개월 안에 인터넷 전체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속도조절이 AI 모델 개발을 아예 멈춘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아모데이는 모델 훈련이나 기술 발전 자체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모델을 정렬하고 안전장치를 갖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고 제3자 평가기관이 이를 검증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오픈소스 AI 모델을 만드는 기업도 이 합의에 동참하나요?
이번 동조 대열은 앤트로픽, 오픈AI, xAI, 구글 딥마인드 등 폐쇄형 모델 개발사 중심입니다. 라마 같은 오픈소스 모델을 다루는 메타 등은 별도로 언급되지 않았으며, 공개형 개발 방식이라 통제 접근 자체가 다르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아모데이의 글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We Must Pace the Frontier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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