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워시 첫 잭슨홀 연설, 포워드 가이던스를 접은 이유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2026년 8월 28일(현지시간)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취임 후 첫 잭슨홀 연설을 했습니다. 취임 100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연설 제목은 “In Our Time”이었고,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이 주최하는 이번 심포지엄의 주제는 “금융 혁신이 결제와 정책에 갖는 함의”였습니다.
이 연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워시 의장이 향후 금리 경로를 미리 약속하지 않겠다고 밝힌 부분입니다. 시장이 원했던 명확한 신호 대신, 그는 연준이 왜 앞으로 그런 신호를 잘 주지 않을 것인지를 설명하는 데 연설의 상당 부분을 썼습니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 자료 : Xinhua via Getty Images
AI를 새로운 생산요소로 보고 태스크포스를 꾸린 이유
워시 의장은 AI를 “80년 된 이름을 가진 최신 기술”이라고 표현하며, 최근 AI의 발전 속도가 기대치를 웃돌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주요 AI 랩 두 곳의 토큰 판매액이 이미 1,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전년 대비 500% 이상 늘었다는 수치도 언급했습니다.
그가 던진 질문은 AI가 정말로 새로운 생산요소인지, 그렇다면 그 수익이 AI 랩과 반도체 기업, 에너지 기업,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노동자와 소비자 사이에 어떻게 배분될지, 토큰 가격은 어느 수준에서 균형을 찾을지였습니다. 아직 답이 나온 질문들은 아니지만, 이런 질문 자체가 연준의 미래 통화정책 설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입니다.
이를 위해 연준 내부에 생산성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 태스크포스의 결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현재 진행 중인 통화정책 결정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지금 하는 작업은 당장의 금리 결정이 아니라 미래의 통화정책을 준비하기 위한 지적 투자라는 설명입니다.
기업들의 실제 투자 흐름도 이 진단을 뒷받침합니다. 설비와 무형자산에 대한 4분기 기준 자본 지출 증가율은 약 9%였고, 그중 절반 이상이 AI 관련 투자였다고 워시 의장은 밝혔습니다.
포워드 가이던스가 오히려 시장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지적
워시 의장은 연준이 향후 정책 경로를 미리 알리는 관행, 즉 포워드 가이던스에 오랫동안 불편함을 느껴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관행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꼭 필요한 도구였지만, “그 관행이 이제는 환영받을 시기를 지났다”고 평가했습니다.
그가 강조한 점은 정책 방향에 대한 투명한 소통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소통은 더 나은 정책 결정에 기여할 때만 가치가 있고,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시장에 잘못된 확신을 심어주고 연준의 미래 선택지를 스스로 좁히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는 이 현상을 시장 참여자들이 연준의 신호만 보고 움직이고, 연준은 다시 그 시장 가격을 참고해 정책을 결정하는 자기참조적 순환 구조로 설명했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연준과 시장 양쪽 모두 새로운 경제 신호에 둔감해질 위험이 있고, 그 비용은 금융자산을 보유한 시장 참여자보다 그렇지 못한 일반 가계에 더 크게 돌아간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워시 의장은 앞으로 연준이 향후 금리 경로를 미리 약속하기보다, 상황에 맞게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유연성을 유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연준이 인색하고 신중해야 하며, 순진해서는 안 된다”는 표현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통화정책을 이끌 여섯 가지 원칙
워시 의장은 이날 연설에서 앞으로 통화정책을 이끌 원칙 여섯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철 지난 데이터나 개별 지표 하나에 의존하기보다 최신 추세를 중심으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경제의 총공급은 직접 관측할 수 없고 추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판단하는 작업에는 본질적으로 오차가 따른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2% PCE 물가 목표는 고정되고 확고한 목표이며, 물가 안정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넷째, 고용 안정과 물가 안정이라는 두 책무가 본질적으로 서로 충돌하는 관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섯째, 단기 금리를 여전히 주된 정책 수단으로 삼고, 시중 통화량이 금융 환경과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다시 중요하게 살펴보겠다는 것입니다.
여섯째, 더 조용하고 목적이 분명한 소통을 하는 연준이 스스로의 책무를 더 잘 이행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더 명확히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은 3.7%, 실업률은 4.1%, 그래도 남은 숙제
워시 의장은 현재 경제 상황을 낙관도 비관도 아닌 시선으로 짚었습니다.
노동 시장은 안정적입니다. 실업률은 4.1%로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고, 이 수준이 약 2년째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4주 평균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도 수십 년 만의 최저 수준에 가깝습니다. 워시 의장은 이런 상황을 팬데믹 이후 노동자와 기업 사이의 재매칭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결과로 설명하며, 전반적으로 완전 고용에 부합하는 상태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최근 대학 졸업자들의 취업 상황처럼 우려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문제는 물가입니다. 12개월 기준 PCE 물가 상승률은 3.7%로 2% 목표를 여전히 크게 웃돌고 있고, 6개월 기준으로는 4.1%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최근 몇 달의 PCE와 CPI 지표가 예상보다는 양호했지만, 이것만으로 기조적인 흐름이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워시 의장의 판단입니다.
그는 199개 PCE 세부 품목을 나눠 살펴본 결과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지난 12개월 동안 가격이 3% 넘게 오른 품목의 비중은 54%였습니다. 팬데믹 직후 정점이었던 약 77%보다는 낮아졌지만, 팬데믹 이전 평균인 약 32%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입니다. 최근 6개월로 좁혀 봐도 연율 기준 3% 넘게 오른 품목의 비중은 49%였습니다. 물가 상승 압력이 몇몇 품목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여러 품목에 걸쳐 폭넓게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안정적이고 잘 고정돼 있다고 평가했지만, 이 상태를 계속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단서도 달았습니다. 65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연준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물가가 2% 목표를 향해 충분히 확실한 속도로 내려가고 있다는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연준에게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업 실적과 금융 여건은 이런 진단과 다소 대비됩니다. S&P 500 기업들의 이익은 지난 1년간 20% 넘게 늘었고, 신용 스프레드는 역사적 저점 부근에 머물러 있으며, 은행 대출 태도도 완화되는 흐름입니다. 실질 소비 지출은 4분기 기준 2% 넘게 늘었고, 민간 국내 최종 수요(PDFP)도 3%에 가까운 증가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금융 여건을 긴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워시 의장의 결론입니다.
정리
이날 연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워시 의장은 시장이 기대했던 “명확한 금리 신호” 대신 “왜 그런 신호를 함부로 주지 않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연설 말미에 척 예거 장군의 발언을 인용하며, 자신의 접근 방식을 “결정이 아니라 규율”이라는 말로 정리했습니다.
앞으로 지켜봐야 할 지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연준 내 AI 태스크포스의 연구 결과가 실제로 통화정책 프레임워크에 어떻게 반영될지이고, 다른 하나는 3.7%인 인플레이션이 다음 몇 차례 지표에서 얼마나 빠르게 2% 목표 쪽으로 내려오는지입니다. 워시 의장 스스로도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밝힌 만큼, 다음 FOMC 회의에서 나올 코멘트가 이번 연설의 방향을 재확인해줄지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이 글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공개한 연설 원문과 CNBC, Fox Business 등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정리한 정보 제공 목적의 글이며, 특정 자산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인용된 수치는 2026년 8월 28일 연설 기준이며 이후 수정되거나 다른 지표로 갱신될 수 있으니, 투자 판단 전에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공식 발표와 이후 나올 FOMC 성명서에서 최신 내용을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참고한 투자 판단과 그에 따른 손익은 투자자 본인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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