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 뇌로 둠 한다고? 구글이 공개한 세계 최대 뇌 지도, 이렇게 만들었다

초파리 뇌 안에서 둠이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진짜였습니다. 지난 9월 3일 구글 리서치와 HHMI 자넬리아 연구캠퍼스가 성체 수컷 초파리의 뇌와 중추신경계 전체를 지도로 그린 커넥톰을 공개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개발자들이 이 뇌 모델에 게임 화면을 연결해 캐릭터를 조작하는 실험을 잇따라 선보였습니다. 뉴런 16만 6천여 개, 시냅스 1억 2,500만 개를 담은 이 지도가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왜 이런 이색 실험까지 이어졌는지 정리했습니다.

초파리 뇌 지도, 커넥톰이란 무엇인가

커넥톰(connectome)은 뇌 안의 모든 뉴런과 그 뉴런들이 시냅스로 연결된 방식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려낸 신경 연결지도입니다. 사람 뇌를 예로 들면 대략 860억 개의 뉴런이 있는데, 이걸 전부 지도화하는 건 지금 기술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뇌과학자들은 뉴런 수가 훨씬 적으면서도 시각, 후각, 학습, 짝짓기 같은 복잡한 행동을 보이는 초파리를 모델 생물로 택해왔습니다.

구글 리서치와 HHMI 자넬리아가 공개한 수컷 초파리 커넥톰의 3D 렌더링. 왼쪽 원형 구조가 시각엽, 오른쪽이 중앙뇌, 아래로 뻗은 부분이 복부신경삭이다. (출처: Google Research)

이번에 공개된 지도가 특별한 이유는 범위입니다. 뇌만 그린 게 아니라 눈에서 들어온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시각엽 2개와 사람의 척수에 해당하는 복부신경삭(VNC)까지 포함해 중추신경계 전체를 담았습니다. 감각 입력부터 운동 출력까지 신경 신호가 지나가는 경로 전체를 한 번에 볼 수 있게 된 셈입니다.

뉴런 16만 6천 개, 시냅스 1억 2,500만 개의 실제 규모

이번 수컷 커넥톰은 뉴런 수 기준으로 지금까지 나온 뇌 지도 가운데 가장 큽니다. 정확한 수치는 뉴런 166,000여 개, 시냅스 연결 1억 2,500만 개입니다.

중앙뇌(녹색), 시각엽(보라색), 복부신경삭(파란색)으로 구성된 수컷 초파리 중추신경계. 전체 크기는 가로 733마이크로미터, 세로 1,014마이크로미터에 불과하다. (출처: Google Research)

여기서 짚어둘 부분은 앞서 나온 초파리 뇌 지도와의 관계입니다. 2024년 10월 네이처에 발표된 FlyWire 프로젝트는 성체 암컷 초파리의 뇌 커넥톰을 완성했는데, 뉴런 약 139,000개와 시냅스 5,000만 개를 담았습니다. 50개 연구실 200여 명이 참여한 국제 컨소시엄이 이뤄낸 성과였습니다. 이번 수컷 지도는 여기에 복부신경삭까지 추가로 그려 넣었고, 시냅스 수도 2배 이상 늘었습니다.

암수 지도를 나란히 놓고 보니 흥미로운 차이도 드러났습니다. 예를 들어 AOTU008이라는 뉴런은 수컷에서만 추가 돌기 2개가 자라나 있는데, 이 차이가 구애 행동이나 공격성처럼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행동의 신경학적 근거로 추정됩니다.

AOTU008 뉴런의 성별 차이. 위쪽 녹색이 수컷, 아래쪽 자주색이 암컷이며, 화살표로 표시된 부분이 수컷에만 있는 추가 돌기다. (출처: Google Research)

초파리 뇌를 슬라이스로 자르고 AI로 다시 붙인 방법

이 정도 규모의 지도를 사람 손으로 그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연구진은 초파리 뇌를 굳힌 다음 수백만 장의 초박막 슬라이스로 잘라 각각을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했습니다. 이렇게 나온 2차원 이미지는 낱장의 사진일 뿐이라, 이걸 다시 3차원 신경 구조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AI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연구진은 흐르는 듯 이미지를 채워나가며 뉴런의 경계를 추적하는 홍수 채우기 네트워크(flood-filling networks)와, 잘린 뉴런 조각들을 다시 이어 붙이는 PATHFINDER 같은 신경망 기술을 활용해 수백만 장의 절편 이미지를 하나의 연속된 3D 신경 지도로 복원했습니다. 사람이 일일이 확인하고 교정하는 과정도 병행했지만, AI 없이는 이 규모의 재구성 작업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공개되자마자 시작된 이색 실험들

지도가 공개되자 개발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논문을 읽는 게 아니라 이 뇌를 직접 작동시켜 보는 것이었습니다.

엔지니어 알렉스 워머스는 166,700개 뉴런으로 구성된 초파리 뇌 계산 모델을 만들어 둠 게임 화면과 연결했습니다. 게임 화면에서 발생하는 시각 자극이 초파리의 감각 뉴런을 자극하도록 입력을 설계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신경 활동을 캐릭터의 이동과 공격 같은 게임 조작으로 변환하는 방식입니다. 개발자 제시카 파켓도 비슷한 방식으로 슈퍼 마리오 64를 조작하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아직은 마리오가 반복적으로 점프하다 벽에 부딪히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워머스가 9월 9일 X(트위터)에 올린 실제 실행 장면은 아래 링크에서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알렉스 워머스의 초파리 뇌 둠 실행 데모 보기

더 적극적인 실험도 나왔습니다. 코인베이스 출신 엔지니어는 ‘스톤크플라이(Stonkfly)’라는 프로젝트를 깃허브에 공개하고, 초파리 뇌 모델에 캔들스틱 차트 이미지를 시각 입력으로 넣어 암호화폐 거래를 시켰습니다. 거래에서 수익이 나면 도파민 관련 뉴런 15개를 자극하고, 손실이 나면 혐오 관련 뉴런 2개를 자극하는 생물학적 강화학습 구조를 적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워머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12억 매개변수 규모의 언어모델에 초파리 뇌 모델을 연결한 ‘파리 언어모델(FLM)’도 시도했지만, 생물학적 신경망을 결합해도 언어 처리 능력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는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이 실험들이 과학적으로 엄밀한 성과는 아닙니다. 다만 그동안 논문과 시각화 이미지로만 접하던 초파리 뇌 회로를 누구나 내려받아 직접 돌려볼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커넥톰 데이터의 공개 자체가 어떤 의미인지를 체감하게 해준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초파리 뇌 지도가 알츠하이머 연구까지 이어지는 이유

초파리 뇌 지도가 주목받는 진짜 이유는 게임 조작 실험보다 여기에 있습니다. 초파리와 인간은 뉴런의 작동 방식이나 신경전달물질 체계에서 상당 부분을 공유합니다.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회로, 미각을 감지하는 회로, 짝짓기나 공격성 같은 사회적 행동을 조절하는 회로가 어떻게 배선되어 있는지 초파리 뇌에서 먼저 밝혀내면, 이를 토대로 사람 뇌에서 같은 기능을 하는 회로를 찾아가는 연구가 가능해집니다.

게임 조작 실험 등에 쓰인 초파리 뇌 커넥톰의 정면 렌더링. (출처: Google Research)

연구진이 밝힌 장기적인 목표도 여기에 있습니다. 신경 회로의 기본 배선을 이해하면, 알츠하이머와 우울증, 조현병처럼 신경 회로 이상과 관련된 질환의 치료법 연구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초파리 뇌 지도 하나로 당장 치료제가 나오지는 않지만, 신경과학 전체가 참고할 기준 지도가 하나 더 생겼다는 점에서 11년에 걸친 이번 연구의 의미가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초파리 뇌 지도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구글과 HHMI 자넬리아가 공개한 데이터는 Neuroglancer라는 웹 기반 3D 뷰어를 통해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관련 논문과 데이터셋은 구글 리서치 블로그와 자넬리아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링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 뇌도 이런 방식으로 지도화할 수 있나요?

사람 뇌는 뉴런 수가 초파리보다 백만 배 이상 많아 지금 기술로는 전체를 지도화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마우스 뇌 등 더 큰 모델 생물로 범위를 넓혀가는 연구가 이미 진행 중이며, 초파리에서 확립한 촬영과 AI 재구성 기법이 그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번 수컷 지도와 2024년 암컷 FlyWire 지도는 뭐가 다른가요?

암컷 FlyWire 지도는 뉴런 약 139,000개와 시냅스 5,000만 개로 뇌 부분을 담았습니다. 이번 수컷 지도는 뉴런 166,000여 개와 시냅스 1억 2,500만 개로, 뇌뿐 아니라 척수 역할을 하는 복부신경삭까지 포함한 중추신경계 전체를 지도화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초파리 뇌 모델로 게임을 조작하는 실험은 공식 연구인가요?

아닙니다. 구글과 HHMI 자넬리아의 공식 연구는 커넥톰 지도 자체이고, 둠이나 마리오 64를 조작하는 실험은 데이터가 공개된 뒤 개별 개발자들이 취미로 진행한 비공식 프로젝트입니다. 과학적 검증을 거친 결과가 아니라 데이터를 가지고 놀아본 실험으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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